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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에서 눈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겨울이 시작되고, 눈발이 가끔 날린 적이 있는데 오늘은 얼마나 눈이 올려나. 슬슬 일이 끝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준비하겠지. 눈이 살짝 내려와 내 손바닥에서 조금씩 녹아들 때 나는 문득 흘러가 버린 지난 날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겨울이 유독 추운 곳에 살았다. 눈도 자주 오고 바람도 셌다. 잠시만 나가도 입김이 곧 얼어붙을 것 같았다. &nbsp; 어른들은 근처에 얼음골이라는 곳이 있어 거기서 나오는 한기가 원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른들은 절대로 거기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 한기도 한기지만, 거기에 사는 요괴들에게 해코지당할까봐 걱정하신 것이다. 거기에 사는 요괴들은 설녀라 칭해지는 존재들인데, 한결같이 매우 아름답고 신비스럽지만, 한 번 그들의 마수에 걸리면 꼼짝없이 얼어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근처를 돌아다니다 실종되거나 동사한 어른들이 여럿 있다나.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겨울철에는 신경써서 다녔다. 어차피 그 설녀라는 존재들도 한 번도 본 적 없고. 겨울철이 아니면 딱히 문제될 것도 없고, 한기가 뿜어져나오는지 몰라도 그렇게 더운 동네는 아니어서 더 그랬다. 그 해 겨울이 오기까지는 말이다. 평소대로 학교를 다니다가, 겨울방학이 되면 눈길을 걸어다니며 책을 빌려 읽는 게 취미였다. 어차피 그 때는 닥히 할만한 전자오락 같은 것도 없으니 책이라도 빌려 읽는 것이다. 물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는 어림도 없지만, 그 땐 그때대로 따뜻한 모닥불 근처에서 책을 더 읽으면 되고. 그래서, 그 날도 새로운 책을 빌리러 다른 마을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눈이 그친 날이지만 눈이 제법 쌓인 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내 발자국 말고 다른 발자국이 같이 보인다. 이상하네. 아까 갈 때는 나 혼자였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눈앞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나는 즉각 책주머니를 내려놓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어라? 내 앞에 보이는 건 설원의 맹수도 아니고 무서운 요괴도 아니다. 어린 꼬마 소녀 하나가 눈밭에 앉아서 훌쩍거리고 있다. 새까맣고 긴 머리카락, 머리에 왠 막대기 같은 걸 꽃고 있고, 새하얀 겉옷을 입고 있어 눈밭에서 알아보기 힘들다. 대체 왜 여기서 울고 있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본다. 하지만 소녀는 날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훌쩍이고 있다. 어떡해야 하지? 달래야 하나? 그냥 지켜봐야 하나? 그냥 냅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막상 이런 광경을 처음 보니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한참을 쭈뼛거리며 서 있던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소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본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나는 잠겨있는 목을 억지로 열고 달래듯이 말해본다. &#39;괜찮아?...어? 그러니까? 진짜 괜찮아?&#39;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첫 마디였다. 의도는 좋았지만 뭔가 잘 닿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내가 얼굴을 더 붉히며 소리를 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 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으니까. 새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특히 눈물이 가득 고인 커다란 눈은 우리와 같은 눈색이 아닌 마치 자수정을 보는 듯한 보랏빛이라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눈싸움도 아니고 오랫동안 쳐다본 건 아마 처음이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까지 만난 여자애들 중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만날 여자들 중에서 그 애만큼 나에게 다가온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TO BE CONTINUED 1. 팬아트 중 책을 읽는 대장님을 보시고&nbsp;애기설녀 시절부터 독서광이었다는 대장님의 댓글 +눈 오는 날에 바로 글감이 떠올라 작성하였습니다. 2. 한 번에 다 쓰기에는 양이 많기도 하고 부담이 되실 테니2~3편 정도로 나누어 쓸 예정입니다. 3. 그냥 대장님과 빙구쿤의 풋풋한 시절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4. 어정쩡하게 끊은 것 같다면 기분 탓입니다. 5. 대 세 라